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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영화 곡성

by 케이쩡 2025. 6. 13.

2016년 개봉한 「곡성」은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과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 인간의 믿음, 공포, 그리고 무지를 심도 깊게 그려낸 한국형 미스터리 스릴러의 걸작입니다. 「추격자」「황해」에 이어 나홍진 감독이 선보인 세 번째 작품으로, 단순한 공포를 넘어선 종교적 상징과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영화계에 강한 충격을 남겼습니다. 이 글에서는 「곡성」의 서사 구조, 상징 코드, 그리고 여운이 오래 남는 이유에 대해 분석합니다.

 

 

미스터리와 불안, 장르를 넘나드는 구성

「곡성」은 시골 마을 ‘곡성’에서 시작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과 광기 어린 발작, 그리고 이 모든 사건과 연결되어 보이는 외지인(쿠니무라 준)의 등장.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와 믿음의 혼란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입니다.

주인공 종구(곽도원)는 경찰이지만 사건을 과학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점점 감정과 본능에 휘둘리는 무력한 인간으로 전락해 갑니다. 그의 딸 효진이 피해자가 되면서, 이야기는 개인적 고통과 종교적 불안이 교차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곡성」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스릴러, 공포, 드라마, 심지어 블랙코미디의 요소까지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습니다. 예측을 빗나가는 구성, 장면 사이에 흐르는 불편한 침묵, 엇갈리는 단서들은 관객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 모든 장치들은 결국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종교 코드와 상징, 해석의 다층성

「곡성」의 가장 큰 특징은 종교적 상징과 복합적 해석 가능성입니다. 영화 속에는 기독교, 무속, 불교 등 다양한 종교적 요소가 등장하며, 이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미장센을 형성합니다.

외지인은 악마인가, 아니면 억울한 피해자인가? 무당 일광은 진정한 조력자인가, 아니면 악의 도구인가? 주인공의 선택은 옳았는가? 영화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관객이 각자의 믿음과 해석에 따라 결론을 내리게 유도합니다.

영화의 후반부, 일광이 굿을 진행할 때 외지인도 동시에 의식을 행하는 장면은 두 존재의 대립인지, 공모인지 모호하게 만듭니다. 이는 감독이 철저히 의도한 서사적 전략으로, 관객은 해석의 주체가 되며 진실보다 믿음이 우선되는 인간 심리를 자각하게 됩니다.

또한 사진, 염소, 붉은색, 닭, 버섯 등 다양한 시각적 상징물들이 반복되며, 해석의 단서를 주는 동시에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이런 디테일한 상징의 배치는 「곡성」을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닌, 철학적 미스터리로 격상시키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곽도원과 황정민, 믿음을 연기한 배우들

「곡성」의 감정선을 이끄는 주축은 곽도원입니다. 평범한 시골 경찰로 등장해, 점점 광기와 절망에 휘말리는 그의 모습은 믿음의 붕괴와 인간의 나약함을 실감 나게 그려냅니다. 특히 딸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절규하는 장면에서는, 이성이 마비된 인간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무당 일광 역시 인상적인 캐릭터입니다. 처음에는 도움을 주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의도와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커집니다. 그의 연기는 능청과 신비로움 사이를 오가며, 관객의 신뢰를 뒤흔드는 데 성공합니다.

쿠니무라 준의 외지인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대사가 많지 않음에도 불길한 존재감을 시각과 행동만으로 구현하며, 공포 그 자체로 기능합니다. 그의 붉은 속옷, 정육점 장면, 사진 찍는 습관 등은 모두 섬뜩함을 배가시키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결론

「곡성」은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라, 믿음과 공포,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한국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입니다. 나홍진 감독의 섬세한 연출,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다층적인 상징은 이 영화를 지금 다시 봐도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진짜 공포는 귀신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믿고 싶은 것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싶다면, 「곡성」을 꼭 다시 감상해보세요.